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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칼럼

제왕절개(帝王切開) 수술은 난산(難産)의 비상수단일 뿐이다.

by 예당한의원 202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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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한 젊은 여성이 상의를 탈의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것을 양쪽 손으로 잡으며 옆으로 서서 찍은 사진
임신

 손오공(孫悟空)과 함께 현장법사(玄奘法師)가 들렀던 곳 중에 덕차시라국이 있다.

 

 인도(印度)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강 상류지대에 있었던 이 고대 도시의 원명은 타키시라이다.

 

 이 도시는 기원전 5백여 년에 경제, 문화,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당시에 이미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아이를 꺼내는 수술이 성행했다고 한다.

 

 알렉산더(Alexander) 대왕도 이 도시에 입성한 바 있어서, 이 획기적인 수술 방법은 지중해 연안으로 전파되었고, 그래서 먼 훗날 로마의 영웅적 제왕의 자리를 누렸던 시저(Caesar) 역시 이 수술을 통해 태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이 수술을 제왕절개(帝王切開)수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와 다른 설도 있다.

 

 제왕절개(帝王切開)를 나타내는 용어는 라틴어의 벤다라는 뜻의 말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여하간 제왕절개(帝王切開)수술은 타키시라에서 유럽으로 전해졌고 인도에서도 성행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러니까 기원전 5백여 년경의 인도 명의였던 지바카코마라바카 역시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제왕절개(帝王切開)수술을 시술했었노라고 경전인 찬집백련경(撰集百緣經)에 기술하고 있다.

 

서양의 산부인과병원의 수술실에서 의사들이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서 애기를 출산하고 탯줄을 자르고 있는 것을 찍은 사진
제왕절개 수술

 제왕절개(帝王切開)수술이란 태아(胎兒)를 생리적인 산도(産道)를 통해서 만출(娩出)하지 않고 자궁벽(子宮壁)을 절개(切開)하여 태아(胎兒)와 그 부속물을 만출(娩出)시키는 수술로, 일반적으로 경복막(經腹膜) 수술이 현재 사용되고 있으며, 이 수술에는 복벽(腹壁)을 세로로 절개(切開)하는 방법과 가로로 절개(切開)하는 방법이 있다.

 

 일종의 난산(難産)의 비상수단이랄 수 있어서 모체(母體) 또는 태아(胎兒)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하거나 또는 이것을 예지할 수 있는 상황, 혹은 태위(胎位), 태세(胎勢)의 이상이나 태아가사(胎兒假死)상태 등이 인정되어 조급히 태아(胎兒)를 만출(娩出)시켜야 할 때 실시하는 수술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케네디 대통령 부인 재클린 여사 등 많은 유명 여성들이 이 수술을 받은 후 이 수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번져나갔다.

 

 요즘에는 위험성이 적고 아픔도 별로 심하지 않는 무통분만(無痛分娩)의 하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심지어는 정상분만(正常分娩)으로 질()이 늘어나 출산(出産) 후 정상생활이 염려된다면서 이 수술을 원하거나 혹은 진통(陣痛)의 아픔과 몸이 망가지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서 이 수술을 산모(産母) 스스로 선택하는 경향까지 있다.

 

 그러나 이 수술은 난산(難産)의 비상수단일 뿐 결코 최선책은 아니다.

 

 합병증(合倂症)마저 생길 수 있고 다음 분만(分娩)을 할 때 자궁파열(子宮破裂)의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인체의 경락 중에서 경외기혈인 임맥의 혈자리와 혈자리와 경락의 흐름을 표시를 한 이미지 사진
임맥

 또 임맥(任脈)이라는 복부(腹部) 정중선의 경맥(經脈)이 손상되어 건강(健康)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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