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火病), 울화증(鬱火症)은 어떤 심리적 충격에 의해 나타나는 신경(神經) 증상이 복합된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울화증(鬱火症)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충격기(衝擊期), 갈등기(葛藤期), 체념기(諦念期), 증상기(症狀期) 등 4단계가 있다.
충격기(衝擊期)에는 배신감(背信感)과 증오(憎惡), 분노(忿怒)로 얼룩진다.
이것이 가치체계나 도덕이나 자신의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 등과 충돌하면서 마음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갈등기(葛藤期)이다.
엄청난 고뇌(苦惱)는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한(恨)이 맺히고 한(恨)이 쌓이면서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체념(諦念)하는 시기에 들어간다.
‘사는 것이 다 그런 거지 뭐’하면서도 미련(未練)과 집념(執念)을 버리지 못하는 속에서 비로소 울화증(鬱火症)의 증상기(症狀期)를 맞게 되어 여러 가지 증상들이 얽히고설키며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화증(鬱火症)을 일으키는 ‘어떤 심리적 충격’의 ‘어떤’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현실에 존재하거나 상상 속에 있거나를 불문하고 그 개인에게 적응할 것을 요구하는 어떤 자극’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압박감도 있지만 때로는 남편이나 시어머니나 자식 등 둘레에는 어떤 압박감을 주는 뚜렷한 원인이 없는데도 자기 스스로 상상하여 둘레가 자기에게 많은 것에 적응하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해, 그 심리적 갈등으로 끝내는 울화증(鬱火症)을 형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울화증(鬱火症)은 유전적 소인이 강하며, 개인 성향이 강한 병이기 때문에 울화증(鬱火症)을 이해하려면 개인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울화증(鬱火症)을 앓기 쉬운 타입은 어떤 타입일까?
히포크라테스의 학설을 이어받은 갈레누스나 철학자 칸트는 사람의 체질을 흥분성 다혈질(多血質), 사고력이 지나친 우울질(憂鬱質), 완고한 담즙질(膽汁質), 이해관계를 따지는 점액질(粘液質),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다혈질(多血質)이기 때문에 울화증(鬱火症)에 잘 걸리는지, 울화증(鬱火症)에 걸렸기 때문에 흥분(興奮)을 잘 하는지 하는 것은 마치 닭과 달걀 같은 질문이지만 분명 다혈질(多血質)은 울화증(鬱火症)을 앓기 쉬운 체질 중 하나이다.
물론 사고력(思考力)이 지나친 우울질(憂鬱質)이나 완고한 담즙질(膽汁質)의 경우에도 울화증(鬱火症)을 잘 앓는다.
사상체질(四象體質)로는 소음인(少陰人)과 소양인(少陽人) 체질에서 울화증(鬱火症)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음인(少陰人)이 어떤 체질이고 소양인(少陽人)이 어떤 체질이냐 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멜라닌 같은 여성이 소음인(少陰人)이고, 스칼렛 같은 여성이 소양인(少陽人)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보다 알기 쉽게 성격으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은 성격이 울화증(鬱火症)을 잘 앓는다고 할 수 있다.
의존적(依存的)이면서 요구(要求)가 많은 성격이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호를 갈망하는 상태이며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고조되어 있는 타입이다.
질서정연(秩序整然)하고 빈틈없는 성격이다.
강박적(强迫的)이며 완고(頑固)한 경향을 갖고 있으며 복종(服從)과 반역(反逆)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심적 갈등이 두드러진 성격이다.
울화증(鬱火症)에 걸리면 평소의 성격이 더욱 또렷하게 표출된다.
두려움이 많은 성격이다.
자신의 결점이나 약점이 드러나 자신이 추한 모습으로 비추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성격이며, 여성적 이미지의 손상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외에도 오래 고통(苦痛)을 받고 자기희생(自己犧牲)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 울화증(鬱火症)에 잘 걸리며 또는 마음속을 전혀 안 보이면서 매사를 의심(疑心)하는 성격이거나 우월감(優越感)에 차서 가족 구성원 간에 경쟁적 관계를 갖는 성격이거나 어린 시절 경험한 바 있는 사랑과 상실의 재현을 두려워해 마음을 닫고 매사에 관심을 주지 않으려는 성격일 때도 문제가 된다.
울화증(鬱火症)은 개인 성향이 강한 병이기 때문에 병을 이해하려면 개인적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 특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가족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개인보다 가족을 위한 사회에서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 중에서도 울화증(鬱火症)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고부(姑婦) 관계이다.
부자(父子) 중심가족에서 특히 한국적인 직계가족에서 시집을 온 어머니는 이른바 성취지위를 획득해야 하고 성취의 가장 큰 요건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의 영원한 심리적 방파제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같은 여자이면서 아들을 사이에 두고 원천적으로 부정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으므로 고부(姑婦) 관계는 두 여성 모두에게 울화증(鬱火症)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고부(姑婦) 관계의 지위 상하로 시어머니보다 며느리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며, 이 관계가 악화될 때에는 다른 가족원에게 영향을 주어 아들의 태도가 미묘해지고 시누이가 개입하는 경우도 생기므로 결국 며느리에게 참을 수 없는 울화(鬱火)를 안겨주게 마련이다.
가정의 조화는 소속감과 개별성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소속감과 개별성, 어느 한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가정의 조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소속감에 묶이다 보면 한(恨)을 풀지 못해 울화증(鬱火症)이 오게 되며, 개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다 보면 가족 구성원의 마찰로 울화증(鬱火症)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가정의 조화는 가족 구성원 간의 경계선이 뚜렷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온 가족이 동일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것은 끝내 부부간의 갈등을 자아내고 정서적 이혼 상황, 다시 말해서 같이 살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정서적 관계는 거의 없어진 상황에 빠지게 되고 이것은 울화증(鬱火症)의 한 원인이 된다.
울화증(鬱火症)은 울증(鬱症)과 화증(火症)의 복합 증후군이다.
울증(鬱症)이 주 증상으로 나타낼 때는 우울(憂鬱)한 기분이 지배적이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관심과 즐거움을 상실하게 된다.
자는 맛, 밥 맛, 성(性)을 즐기는 맛, 사는 맛 등 네 가지 맛을 잃게 된다.
세상에 쾌면(快眠), 쾌식(快食), 쾌변(快便)이 이루어지면 살 맛 날 정도로 건강해진다는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살맛까지 잃게 되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40세가 좀 넘은 부인이 남편의 외도를 발각한 이후부터 배신감(背信感)과 함께 심한 울화증(鬱火症)에 빠져 남편을 계속 의심(疑心)하며 살다가 그날도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남편에게 바람피우는 것을 보고 살 수 없노라고 한바탕 한풀이를 하고 5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 사건도 있다.
또 ‘엄마의 죽음도 네 운명이 아니냐. 슬퍼만 말고 굳세게 살아라.’라는 유서를 여고 1년 외동딸에게 남기고 말이다.
울화증(鬱火症)을 앓던 과부(寡婦)가 목을 매 자살을 한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고부(姑婦)간의 갈등으로 울화증(鬱火症)을 앓다 어린 아들과 동반 자살을 한 30대 여인도 있다.
이 세 사건을 보면 울화증(鬱火症)에 의한 자살은 가족 구성원에 대한 공격적인 적의(敵意)와 증오심(憎惡心)을 거꾸로 자신에게 향하게 해서 피살의적 원망과 함께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죽임으로써 갈등(葛藤)의 대상에게 보복을 하려는 생각, 그리고 역설적으로 생의 재출발을 통해 억울한 이생을 보상하겠노라는 유아적이고 변형된 욕망에 대한 환상에서 주로 빚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얼마나 무모한 결단인가?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나 시어머니에 대한 적의(敵意)와 증오(憎惡)가 다 풀어질까?
한(恨)의 응어리가 풀어질 만큼 보복이 된 것일까?
이제까지 삶에 투자했던 노력이 보상될까?
울화증(鬱火症)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푹 쉬라고들 한다.
물론 휴식(休息)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울화증(鬱火症)은 쉰다고 고쳐지는 병이 아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할 각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묵은 감정까지 폭발하면서 정면대결해서 결판을 내라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우리는 화(火)가 나면 그 감정을 계속 되새기면서 묵은 감정까지 덧붙임으로써 분노(忿怒)가 폭발할 때까지 분노심(忿怒心)을 스스로 키우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불에 불을 지피고 불에 부채질을 하지 않아야 한다.
울화증(鬱火症)은 감정 폭발로 결판내고자 한다면 결판날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숨과 넋두리로 자학만 할 것도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감정이 있는데도 없는 척 미소를 띠면서 자제를 하거나,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과 인정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므로 상처 난 감정을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방에게 모멸감(侮蔑感)을 주면서까지 마구 표출해서는 안 된다.
이때는 스스로 네 가지 질문을 먼저 하라고 한다.
①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② 나는 왜 이렇게 느끼고 있는가?
③ 나는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④ 나는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이렇게 차분하고 슬기롭게 대결해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언성을 높이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고 상대의 자존심(自尊心)마저 뭉그러뜨리는 표현으로 대결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이 대결해야 한다.
그래야 한(恨)의 찌꺼기를 떨쳐버릴 수 있다.
인도의 전설에는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어떤 사내가 크고 무서운 뱀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그는 뱀과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뱀을 당할 수 없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뱀이 뒤쫓아 와 도망도 치지 못하고 또다시 싸우느라 기진맥진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현자(賢者)가 나타난 말을 했다고 한다.
“도망치는 것을 멈추시오, 싸우는 것도 멈추시오.”라고 말이다.
사내가 말을 했다.
“가만있으면 저 뱀은 나를 잡아먹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자 현자(賢者)가 말을 했다고 한다.
“내 말대로 뱀 곁으로 가서 그 옆에 누워 뱀의 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시오. 그러면 뱀은 당신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고, 당신은 살아날 것입니다.”
이 전설에 나오는 뱀은 운명(運命)이다.
사람들은 운명(運命)과 싸우려 하고 운명(運命)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 도망치고 있지만 점점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싸우려고도 도망치려고도 하지 말고 뱀 곁에 누워 적응하고 운명(運命)의 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면서 운명(運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운명(運命)을 긍정하고 적응하면 운명(運命) 또한 우리를 긍정하고 우리에게 적응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마음의 평온함과 함께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뱀 곁에 누울 수 있는 이 평온함과 용기는 ‘나는 해낼 수 있다.’라는 믿음의 태도이다.
그래서 이런 기도까지 있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며, 이를 구분하는 지혜도 허락하소서.’라는 기도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 중에는 가족 구성원 간에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거나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원망하고 앙탈하고 한(恨)을 품는 것은 나의 마음의 평온이 부족한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것 중에는 내가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바람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 때 나는 화가 난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평온과 용기를 갖고 적응하고 또 변신을 해라.
가족에게 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먼저 이렇게 해라.
반드시 울화(鬱火)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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