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使命感) 없이는 명의(名醫)가 될 수 없다. - 醫貴三世
세상에 직업의 종류가 수만 가지 있지만 가장 고귀하고 힘든 직업이 사람의 병(病)을 다스리는 직책이 아닐까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하필이면 비참하고 괴로워하는 환자를 상대로 할 필요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건강(健康)과 생명(生命)을 지킨다는 성스러운 사명감(使命感) 때문에 평생을 환자와 더불어 아픔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려면 명리(名利)에 움직이지 않는 항심(恒心)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말이 쉽지 항심(恒心)을 지닌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힘들며 오늘날처럼 황금만능(黃金萬能)의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맹자(孟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無恒産而 有恒心者 唯士爲能’
먹고 지내는 데 걱정 없을 정도의 재산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기는 법이지만, 항산(恒産) 없이도 항심(恒心)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사람의 병(病)을 다스리는 사람은 모름지기 선비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醫貴三世 : 論語云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明此二法 不可以權飾妄造所以 醫不三世 不服其藥 九折臂者 乃成良醫 蓋謂 學功須深故也’
사람의 병(病)을 다스리는 직업은 3대째 계승되어 내려오는 전통이 귀하다. 논어(論語)에 말하기를 사명감(使命感)이 없는 사람이 사람의 운명(運命)을 점치거나 병(病)을 고치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법에 통달하려면 권세(權勢)나 꾸밈에 의해서 쉽사리 누구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병(病)을 다스리는 사람은 오랜 전통 있는 사람이라야 안심하고 약(藥)을 받아 복용할 수 있다. 아홉 번 팔이 부러지는 뼈아픈 연구(硏究)와 경험(經驗) 없이는 양의(良醫)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학술(學術)을 깊이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신학(神學)과 의학(醫學)을 전공하는 사람은 드높은 학식(學識)과 인격(人格)을 지닌 사람이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왔는데, 근세의 우리나라에서는 승(僧)과 의(醫)를 천대하여 허준(許浚) 같은 불세출(不世出)의 명의(名醫)도 어의(御醫)까지 지냈는데도 중인(中人) 출신이라고 하여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